소유를 중시하는 야만적 자본주의의 그늘

안타까운 뉴스.. 절망의 어둠 속에서 무엇이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존권보다 소유권이 훨씬 중요하게 여겨지는 야만적 자본주의 문명의 시대. 사람의 가치는 물건의 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사람을 소비하는 사회.
노동이 멸시 당하고 소비가 신성시 되는 동안 인간의 존엄성은 비용과 이익의 계산에 따라 오늘도 그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안타깝다..

오늘도 자신의 가치를 높여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이웃과 동료와 단절된 채 경쟁에 매달려 있다.

사람은 소비재가 아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다.

“Ar scáth a chéile a mhaireann na daoine.”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은 모두 서로의 피난처이다.”) – 아일랜드 속담

변질에 관하여

정치의 계절이 뜨겁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후보들을 보면 역겨운 느낌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삶 속에서 신념을 가지고 묵묵하게 자기의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고 어려운 일임을 절감한다.

남의 상표에 의미만 바꾸기

RE100

RE100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으로, Renewable Energy 100% 의 약자다. 2014년 The Climate Group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졌다. 세계 주요기업이 이미 참여하고 있고 국내도 활성화가 되고 있다, 지금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 연계된 활동이 많아서 귀에 익숙하다.
우연한 기회에 또 다른 ‘R.E.100운동’을 만났는데 그 의미는 Restorative Education 이라고 한다. 이해관계도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속뜻만 다르고 같은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사회 안에서 교육하는 분들의 영역이 이렇게도 치열하고 비루했던가?

선암사

승선교. 하늘위로 날아가고 싶다.. (사진. 현승민)
선암사 경내.. (사진. 현승민)
선암사 선원 뒷마당에는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스님의 안내로 특별히 둘러본 곳. 약수가 나오는 곳이다. 계단식으로 된 이유가 있다. 가장 첫물은 부처님께 그리고 찻물, 둘째는 밥 짓는, 셋째는.. (사진. 현승민)
녹차꽃을 처음 봤다. 이 맘 때면 열매와 꽃을 함께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진. 현승민)

우당 이회영 평전을 읽으며..

우당 이회영 평전 / 책보세

우당 이회영 선생

모든 기득권을 초개같이 버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평전을 퇴근길에 대했다. 많이 배우고,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던데..

대한민국은 언제쯤 이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날 수 있을까? 매일 아침 저녁으로 대통령 후보 뉴스가 가득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후보가 없다.

기득권 지키기는 이념을 가리지 않고 빈부격차와 차별이 날로 심화되는 이 사회는 우당 이회영 선생이 바랐던 사회의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결정 그리고 후회

버텨보자고 다짐했다.

#3 결정 그리고 후회

한국회복적정의협회에 가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일은 후회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 거리, 낮은 급여,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버텨보자고 다짐했다. 한달 정도 시간이 있었다. 사직서를 먼저 작성하고 아내와 함께 덕소를 매주 1회 다녀왔다. 이사가 가능한 환경인지 알아봐야 했고 매일 다닐 길을 미리 익혀야 했다.

국제학교에서 사직서를 냈을 때 과장님이 매우 서운해하셨다. 처음 왔을 때부터 세세하게 많은 부분을 챙겨주고 마음까지 헤아려 주신 고마운 분이었다. 내가 만난 직장 상사 중 이만한 분이 또 있을까 싶다. 학교 담당 직원도 아쉬워하며 고급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전체 직원이 회식에 2차 3차까지 진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지금까지 따뜻하게 기억하는 2017년의 가을이었다.

덕소로 출근 첫 날, 반갑게 맞아주는 듯 하며 낯설었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자리도 없었고, 전임자는 까칠하여 말을 걸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퇴근 시간은 언제인지, 식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1년 전하고 변한 것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새 회복적 정의 운동에 참여하다는 기쁨보다는 후회가 되었다. 나의 결정이었고, 나의 책임이니 꾹 참기로 했다. 그나저나 집에 어떻게 가나.. 2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집. 앞으로 매일 다녀야 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