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원제 Adolescene)

소년의 시간 (원제: Adolescene / 제작: 넷플릭스 / 공개: 2025)

회복적 정의, 청소년 교육, 상담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줄 드라마 시리즈 ‘소년의 시간’(Adolescence)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된 남학생과 가족의 심리를 그린 드라마로 구성, 작품성, 기법 등이 화제가 되었다. 이 시리즈의 감상평은 인터넷에 많아서 따로 쓰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 세계 시청률 1위)

작년 12.3 내란 이후, 계몽령을 외치며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 청년들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즈음에 새롭게 발견하고 우려했던 그것은 또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 첫째 아이가 극우화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었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참 막막했다. 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자신에 낙담하곤 했다.

비록 영국이 배경이지만, 지금 보는 현실과 거의 동일한 문제들을 이 시리즈에서도 담아내고 있는데, 이성을 향한 혐오, 왜곡된 남성성, 스마트폰, 또래문화, 교육제도, 가족관계 등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나는 여기에 공감하면서, 이런 문화에 나도 일조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아프고 자책했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에서는 어떤 분석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그것을 되짚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청소년 교육이나, 활동을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중요한 힌트를 얻는 것은,

‘인내와 존중의 좋은 대화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을 이미 입증할 수 있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 아는 만큼 노력해야겠다. 내가 가장 뼈아프게 들었던 말은‘회복적 정의 운동 한다는 사람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2025년 면접 탈락 경험기

여러 군데 채용 지원 서류를 보내고, 몇몇 곳에서 면접을 진행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3가지 사례를 나눈다.

001 – 1월, Mennonite Central Commitment (동북아지부 사무소)에 지원했다. 면접 후 탈락했다.

  • 처음 판단으로는 여기는 지원해서는 안 될 곳이었다. 첫째, 인천-춘천 장거리 통근 둘째, 직무의 적합성 (회계) 셋째, 언어 (영어)
  • 결과에 관한 기대를 내려놓고 **의 추천으로 지원했지만, 결과는 물론 진행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 지원서 제출 – 에세이 추가 제출 – 면접 – 통보까지 약 45일이 걸렸다. 각 과정마다 직접 진행상황을 물어본 후에야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을 뿐 아니라, 지원자 (나) 를 존중하지 않는 말이 매우 아쉽게 남는다.
  • 지지부진한 동안 두 곳의 면접 기회를 날렸다. 나의 결정이었지만, 이 과정이 늘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 진행 과정에 나의 실언과 느슨함을 인정하면서도, 불쾌한 경험은 오래 남을 것 같다.
  • 탈락 이유는 듣지 못했으나 직접 전화해 준 것에는 감사하나 결과에 관한 위로의 말씀이 유감스러웠다.. 이런 인식이라면 안 가길 잘했다.

002 – 1월, 3월, 416재단에 지원했다. 서로 다른 면접에서 두번 탈락했다.

  • MCC에 지원하기 전에 이미 면접을 진행했다.
  • 면접 결과를 탈락자에게 통보하지 않지만, 이례적으로 직무(회계) 를 하기엔 아까운 인재라며 조심스런 제안을 받았다.
  • 3월에 공모사업을 시작하는데 여기 담당자로 일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4월이 되어서 공개채용으로 입장을 바꿨다.
  • 면접에 참여했지만, 결국 탈락했다.
  • 면접의 질문은 매우 개인적인 내용들이 있었는데 직무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묻고 싶었다. 역시 후유증이 남을 것 같고, 안 가길 다행이다.

003 – 4월 GCF에 지원했다. 면접 심사에서 탈락했다.

  • 세계기후기금이라고 알려진 한국에 상주하는 유일한 유엔기구인 이곳에서 서류 검토 후 면접을 제안해왔다.
  • 나같은 사람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영어로 진행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다.
  • 진행과정에서 전문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친절하고, 간결했다.
  • 면접 질문이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하지 못했다. 내 역량의 부족..
  • 지리적 요건, 환경, 가치를 고려하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 아쉽다. 그러나 후유증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다.

결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더라.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가치와 지향을 가지고 있으며, 감정을 내려놓고 차분하고 묵묵하게 내 길을 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양극화의 불균형은 아슬아슬 하지만, 어쩌다 한번은 기회가 오기도 하고, 어쩌다 어쩌다 그 기회를 잡는데 성공하기도 하더라. 숨도 잘 쉬어지지 않고, 삶에 대한 의욕이 많이 떨어져 있지만, 버티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 저녁 나의 결론.

“젊은 여성들이 새로운 정치 주체라고 말하는 것에 깃든 여성 혐오”

(엄문희)

이번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거리에 선 20-30대 여성들을 ‘새로운 정치 주체’라고 호명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들 여성은 30년전 40년전 아니 100년전에도 있었고, 그 전에도 정치적 주체로 엄연히 존재했었다. 그들은 최근에 각성하여 광장에 나타난 새로운 얼굴이 아니다. 그동안 가부장적 시선에서 무시됐거나 멸시당했던 주체였다. 혐오를 뒤집어쓰고 화형당한 마녀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만세운동을 알리기 위해 치마저고리에 문서를 넣고 겨울산을 넘다 잡혀서 갈기갈기 고문당해 죽은 학생이었으나 ‘의사’로 불리지 못한 여자였을 뿐이다. 있는집 배운집 사내자식으로 태어나 아내와 어머니의 돌봄을 받으며 의거를 일으킬 수 없었을 뿐이고, 미국이나 중국으로 건너가 ’큰 일‘ 하지 못하고 ‘뒷 일’ 하느라 이름이 지워진 가난한 여자였을 뿐이다.

쇠파이프로 시민 때려잡던 민주화운동 시절에 남학생들과 똑같이 싸우고도 당연하게 밀려난 여학생이었고, 학보사나 동아리방에서 술에 취한 선배에게 제압당해 성폭행 당한 학우였을 뿐이다. 여성들은 주먹밥을 날라주며 응원해줘야 칭송 받았고, 싸우고 돌아온 남자를 위로할 줄 알아야 조금 인정 받았다. 그들은 남성 관리인에게 쥐어박히며 무시당한 어린 노동자였고, 저항하면 똥물을 끼얹어 끌어내도 좋은 썅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이 무엇을 한대도 도우미에 지나지 않았고, 주목받는일은 용납 되지 못했다. 강정마을에도 싸우는 사람은 이미 90%가 여성이고, 그들은 과거와 오늘의 젊은 여성들이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외부화 되어 있다. 오죽하면 몇 년 전에 ‘기자회견에서 남성보다 앞에 서서 사진 찍히기’운동을 했을까?

20-30대 젊은 여성들은 ‘여성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우다 암살당했고, 2019 칠레혁명의 도화선도 여성이었으며,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끌고 온 이들도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불평등과 폭력의 대상이며 당사자였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예민하고, 가장 용감했다.

여성들을 ’새로운 정치주체‘라고 호명하지 마라. 남성들이 변화를 못이겨 보수화되며 고착된 사이 고단한 광장에 여성들이 남아있는 것이지, 여성이 이제야 각성해서 뛰어나온게 아니다. 여성들은 과거에도 , 오늘날에도 항상 싸웠고, 무엇보다 싸울 자격을 위해 싸워야했다. 지금 여성을 새로운 정치주체라고 부르는 당신들 남성동지들아! 제발 그러지 마라! 사랑하면서 타자화하는 여성숭배,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 싸움터 라는걸 잊지 마시라.

내재된 폭력

“지구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가장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땅은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로마 8,22)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창세 2,7 참조). 우리의 몸은 지구의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공기를 마시며 지구의 물로 생명과 생기를 얻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찬미 받으소서’)

불안과 희망 사이 –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오랜만에 글을 쓴다. 조금 전까지 몸이 좋지 않아 작업실에서 20분 정도 눈을 붙이고 왔다. 입사 초기라면 긴장한 상태로 생각하지도 못할 호사다. 계약 종료일이 다가올수록 나는 다시 어디로 향하게 될지 궁금하고 불안하다. 어느 때부터인지 가족의 생계에 몰두한 채 마음에 품었던 꿈을 하나씩 포기하고,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으며, 단조로운 일상의 패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 내가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이 있다면 대학원 석사 과정이다. 평화 신학 과정인데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다. 함께하는 사람도 좋고,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 어떤 과정이든 완벽할 수 없고, 부족한 점이 보이고, 때로는 버겁기도 하다. 그냥 사는 것이 버거워서 중도에 포기하거나 얼른 졸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까지 받은 장학금 수혜와 제대로 마침표를 한번 제대로 찍어보지 못한 후회를 이제는 그만하고 싶기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중이다. 동기 부여가 처음 시작할 때와 다른 것이 부끄럽다.

이마저도 회사를 옮기게 되면 다시 불확실한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아일랜드로 가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꿋꿋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며 오랫동안 길을 걷는 사람이 대단하다. 2000년대 제너럴리스트로서 평범한 기술자, 지식노동자, 종교인으로 살아왔는데 막상 주특기가 없으니 나를 상품화하기도 애매하다.

흐릿흐릿한 삶의 길을 언제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대체 나는 어떤 생각과 가치에 목말라하고 있는가?

재판이 정의를 완성했나요?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해결 과정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껴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사안에 따라 재판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사건은 초기에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질문을 몇 가지 남겨본다. 물론, 기사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가 반전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1. 재판 후 피해자의 회복은?
  2. 가해 학생의 이야기는?
  3. 학교의 역할은? 두 학생은 앞으로 어떻게?
  4. 소송까지 이르게 된 배경은?

(기사출처=한경닷컴, 2024/02/14) ‘( )’는 개인적인 덧글.

“중학교 화장실 용변 칸에서 문을 잠그고 소변을 보던 친구를 몰래 훔쳐본 행위는 ‘학교폭력’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024년 2월, 인천지법 행정1-2부(소병진 부장판사)는 중학생 A군이 인천의 한 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낸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 조치 결정 통보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봉사활동과 특별교육 등 통보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모두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A군은 중학교 1학년이던 2023년 4월 쉬는 시간에 친구 B군과 학교 화장실에서 물을 뿌리며 장난을 쳤다. 소변을 보려고 용변 칸 안에 들어간 B군이 문을 잠그자, 옆 칸에 따라 들어간 A군은 변기를 밟고 올라가 위에서 그를 내려다봤다.

이에 B군은 바지를 벗은 채 소변을 보다가 기분이 상했다며 “선을 넘지 말라”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결국 한 달 뒤 학교폭력 대책심의위가 열렸다.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B군은 심의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당시 A군이 내 성기를 봤다.”라며 “사과하라고 했더니 건성건성 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A군이 장난을 친 것 같지만 피해가 좀 컸다.”라며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B군과 가족은 진정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원함)

결국 심의위는 같은 해 5월 변기를 밟고 올라가 친구의 소변보는 모습을 본 행위는 학교폭력 중 하나인 성폭력이라고 판단, A군에게 봉사활동과 특별교육 각각 4시간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 “B군과 접촉하지 말고, 협박이나 보복행위도 하지 말라”는 처분도 내렸다.

(서로 장난치는 사이에서 접촉이 불가한 사이로 바뀜)

이후 A군은 법정대리인인 부모를 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소송에서 “B군이 숨기 장난한다고 생각하고 옆 칸에 들어가 내려다봤다.”라며 “소변을 보는 것 같아 그냥 (변기에서) 내려왔다.”라고 주장했다. 고의가 아닌 과실로 해당 장면을 목격했으며, 처분이 위법하다고도 강조했다.

(A군은 처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사과보다는 변명을 강조함)

하지만 법원은 A군이 B군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며 성폭력에 따른 학교폭력이 맞는다고 인정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유, 무죄가 결정되고 강제적 책임 수행으로 이어짐)

재판부는 “A군은 숨기 장난했다고 주장했지만 둘의 나이와 지능 등을 고려하면 당시 오인할 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라면서 “용변 칸에서 B군이 소변이나 대변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A군이 예측할 수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B군은 상당한 정신적 충격과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다.”라며 “옆 칸의 변기를 밟고 올라가 친구의 용변 칸을 들여다본 행위 자체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직관의 추억

영국에 살면서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제법 사귀었다. 그중 벤(Ben)과 조니(Jonny)는 토트넘 홋스퍼(Tottenham Hotspur)의 열성적인 팬으로 가족 모두가 같은 팀을 응원한다고 한다. 함께 축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매우 친해졌는데, 박지성이 은퇴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에 애정이 식으면서 자연스레 토트넘을 응원하게 되었다. 두 친구는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토트넘의 역사, 저력, 문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어느 날, 조니가 나에게 함께 경기를 보러 가자고 권했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지만, 비싼 비용으로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이었다. 뜻밖에 그는 “내가 표를 예매할 테니 넌 기차표만 준비하면 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네가 토트넘을 응원한다는 것이 정말 기뻐서 내가 표를 샀어.”라는 것이 아닌가! 그때 고마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기차표. 왕복권을 샀다.

며칠 후 (31/01/2015) 나는 공동체 몇몇 친구와 너니튼(Nuneaton)에서 버밍엄(Birmingham)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버밍엄에는 애스턴 빌라(Aston Villa)와 버밍엄 시티(Birmingham City)와 같은 유명 팀이 연고를 두고 있다. 경기가 열리는 곳은 버밍엄 서북쪽에 있는 웨스트브로미치(West Bromwich)로 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원정경기였다. 열차를 갈아타기 전 버밍엄역 앞 거리, 복권 가게에서 오늘의 승리 팀과 예상 점수를 적었다. 나는 토트넘의 2:0 승리를 예상했다.

호손스(The Hawthorns Station)에서 경기장으로 가는 길, 평범한 주택가를 5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호손스역에서 호손스 스타디움으로 가는 길

호손스 역(The Hawthorns Station)으로 이동해 경기장까지 걸어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평범한 주택가를 가득 채운 인파와 응원 소리, 마침 선수단이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해리 케인(Harry Kane), 에릭센(Christian Eriksen)을 멀찌감치 바라왔다.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친구들과 인근 펍(Pub)에서 간단하게 식사했는데 겨울 이적 마감일이라 다른 구장 소식과 이적 소식이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었다. 마감 몇 시간을 남기고 이청용 선수가 극적으로 크리스털 팰리스로 이적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이적시장 마지막 날, 펍은 활기가 넘쳤다.

길거리에서 만난 경찰의 표정은 대부분 상기되어 있었는데 브로미치 팬들은 차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경기 전의 활기는 분명히 있었지만, 상상한 것보다 소란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경기 시간이 되어 경기장으로 들어가는데 “어라? 원정석이 아닌 홈 관중석으로 입장하는데?” 조니에게 물었더니 원정석은 표가 비싸고 구하기 힘들어 홈팀 좌석을 구매했다고 하면서 점퍼 속에 입은 토트넘 유니폼을 살짝 보여줬다. 홈팀 팬이 알게 되면 큰일이 나겠다 싶어 염려되었으나 일단 입장했다.

좁고 오래된 회전문을 통해 입장할 수 있다.
큰 경기장은 아니지만, 역사가 깊은 곳이다.

경기장은 생각보다 컸다. 약25,000명이 들어가는 규모였는데 20세기에 지어진 최초의 축구 리그 경기장이라고 한다. (*최초의 축구장은 셰필드(Sheffield)에 있다) 경기장 안 열기의 대부분은 홈팀을 압도한 원정석에 모인 토트넘 팬의 것이었다. 시작 전부터 그들은 미친 듯이 응원했고, 90분 내내 그랬다. 나는 온몸에 파고드는 냉기에 힘들었지만, 경기장 분위기에 압도된 채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3:1 토트넘이 승리했는데 골을 넣을 때마다 조용히 축하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는지 토트넘이 득점하는 순간 홈팀 관중석에서 환호하던 한 토트넘 팬은 안전요원의 안내를 받아 퇴장당했다.

토트넘 팬들은 90분 내내 시끄러울 정도로 응원했다.

경기 종료 후 원정 팬들은 통제되어 관중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응원을 이어갔다. 다시 호손스 역으로 가니 경찰이 플랫폼까지 나누어 통제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열성적이면 저럴까 싶은 풍경이었다. 조니는 열차를 타자마자 재킷 지퍼를 열어 속에 입은 토트넘의 셔츠를 보이며 승리를 자축했다. 의기양양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좋은 친구 조니 Jonny

7개월 후 손흥민이 독일 레버쿠젠에서 이적료 3,000만 파운드에 토트넘 훗스퍼로 이적했다. 2024년 지금, 나는 절친한 친구를 따라 밀월(Millwall)의 매력에 스며들고 있다.

보온병과 포탄

가끔 커다란 스테인리스 보온병을 들고 출근하는데 문득 생각난 사건과 함께 생각을 적는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현장을 찾은 한 정치인이 보온병을 들고 “이것이 북한이 쏜 포탄입니다.”라고 말해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북한의 기습 포격 후 대응 사격을 하는 등 긴장이 높아지고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했다. 반복되는 핵 실험과 도발로 긴장이 이어지던 중 12년 만에 대북 방송이 재개되었고 개성공단이 폐쇄되었다. (2016년) 잠시 긴장이 누그러진 것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전후였다. 이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남북 화해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 결렬과 COVID-19 등으로 소통과 교류가 중단되면서 경색 기미가 보이더니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는 단절이 된 모양새다.

북한이 2024년 신년사를 냈다. 북한은 각종 담화 등에서 우리를 ‘남한’이 아닌 ‘대한민국’이라 지칭하며 선 긋기에 들어갔다. 이는 그동안 유지한 ‘잠정적 특수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즉, 두 개의 국가 관계로 재설정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통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많은 전문가는 2024년에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해 정부와 대통령실은 ‘가짜 평화’를 운운하며 도발에는 강하게 응징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막강한 국방력에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 전쟁은 그 자체로 모두를 죽음과 절망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누가 먼저 공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 일어나는가의 문제다.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에서 폭격과 교전이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시민이 가족과 집을 잃고 생존을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다. 북한은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보다 희생이 크고 회복이 더딜 것으로 생각한다.

한 정치인이 착각한 보온병은 포탄과 닮았지만, 그 쓰임새는 다르다. 따뜻한 물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어 추운 날씨에 온기를 느끼고 낭만을 누리기에 좋은 물건이다.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도구이자, 현대인의 일상과도 어울리는 도구다. 포탄은 일상과 삶을 파괴한다. 오랫동안 뼈아픈 기억을 남긴다. 남과 북이 포탄이 아닌 보온병을 주고받으면, 따뜻한 온기와 시원한 냉수를 나누며 다시 화해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란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도 일터 한구석, 삶터 어디선가 ‘말 폭탄’이 날아들고 있을 때, 따뜻한 물을 품에 안고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보온병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