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직관의 추억

영국에 살면서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제법 사귀었다. 그중 벤(Ben)과 조니(Jonny)는 토트넘 홋스퍼(Tottenham Hotspur)의 열성적인 팬으로 가족 모두가 같은 팀을 응원한다고 한다. 함께 축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매우 친해졌는데, 박지성이 은퇴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에 애정이 식으면서 자연스레 토트넘을 응원하게 되었다. 두 친구는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토트넘의 역사, 저력, 문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어느 날, 조니가 나에게 함께 경기를 보러 가자고 권했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지만, 비싼 비용으로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이었다. 뜻밖에 그는 “내가 표를 예매할 테니 넌 기차표만 준비하면 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네가 토트넘을 응원한다는 것이 정말 기뻐서 내가 표를 샀어.”라는 것이 아닌가! 그때 고마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기차표. 왕복권을 샀다.

며칠 후 (31/01/2015) 나는 공동체 몇몇 친구와 너니튼(Nuneaton)에서 버밍엄(Birmingham)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버밍엄에는 애스턴 빌라(Aston Villa)와 버밍엄 시티(Birmingham City)와 같은 유명 팀이 연고를 두고 있다. 경기가 열리는 곳은 버밍엄 서북쪽에 있는 웨스트브로미치(West Bromwich)로 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원정경기였다. 열차를 갈아타기 전 버밍엄역 앞 거리, 복권 가게에서 오늘의 승리 팀과 예상 점수를 적었다. 나는 토트넘의 2:0 승리를 예상했다.

호손스(The Hawthorns Station)에서 경기장으로 가는 길, 평범한 주택가를 5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호손스역에서 호손스 스타디움으로 가는 길

호손스 역(The Hawthorns Station)으로 이동해 경기장까지 걸어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평범한 주택가를 가득 채운 인파와 응원 소리, 마침 선수단이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해리 케인(Harry Kane), 에릭센(Christian Eriksen)을 멀찌감치 바라왔다.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친구들과 인근 펍(Pub)에서 간단하게 식사했는데 겨울 이적 마감일이라 다른 구장 소식과 이적 소식이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었다. 마감 몇 시간을 남기고 이청용 선수가 극적으로 크리스털 팰리스로 이적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이적시장 마지막 날, 펍은 활기가 넘쳤다.

길거리에서 만난 경찰의 표정은 대부분 상기되어 있었는데 브로미치 팬들은 차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경기 전의 활기는 분명히 있었지만, 상상한 것보다 소란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경기 시간이 되어 경기장으로 들어가는데 “어라? 원정석이 아닌 홈 관중석으로 입장하는데?” 조니에게 물었더니 원정석은 표가 비싸고 구하기 힘들어 홈팀 좌석을 구매했다고 하면서 점퍼 속에 입은 토트넘 유니폼을 살짝 보여줬다. 홈팀 팬이 알게 되면 큰일이 나겠다 싶어 염려되었으나 일단 입장했다.

좁고 오래된 회전문을 통해 입장할 수 있다.
큰 경기장은 아니지만, 역사가 깊은 곳이다.

경기장은 생각보다 컸다. 약25,000명이 들어가는 규모였는데 20세기에 지어진 최초의 축구 리그 경기장이라고 한다. (*최초의 축구장은 셰필드(Sheffield)에 있다) 경기장 안 열기의 대부분은 홈팀을 압도한 원정석에 모인 토트넘 팬의 것이었다. 시작 전부터 그들은 미친 듯이 응원했고, 90분 내내 그랬다. 나는 온몸에 파고드는 냉기에 힘들었지만, 경기장 분위기에 압도된 채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3:1 토트넘이 승리했는데 골을 넣을 때마다 조용히 축하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는지 토트넘이 득점하는 순간 홈팀 관중석에서 환호하던 한 토트넘 팬은 안전요원의 안내를 받아 퇴장당했다.

토트넘 팬들은 90분 내내 시끄러울 정도로 응원했다.

경기 종료 후 원정 팬들은 통제되어 관중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응원을 이어갔다. 다시 호손스 역으로 가니 경찰이 플랫폼까지 나누어 통제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열성적이면 저럴까 싶은 풍경이었다. 조니는 열차를 타자마자 재킷 지퍼를 열어 속에 입은 토트넘의 셔츠를 보이며 승리를 자축했다. 의기양양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좋은 친구 조니 Jonny

7개월 후 손흥민이 독일 레버쿠젠에서 이적료 3,000만 파운드에 토트넘 훗스퍼로 이적했다. 2024년 지금, 나는 절친한 친구를 따라 밀월(Millwall)의 매력에 스며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