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수인계

업무를 인계해 주는 사람의 태도가 너무 차가워서 당황스러웠다.

낯선 경로는 아니지만 매우 피곤한 상태에서 출근을 했다. 인천 남동구에서 남양주 와부읍 까지 약76km. 경로의 대부분은 고속도로인데 통행료와 자동차 연료비가 크게 부담되었다. 경차 기준으로 1주일에 평균 6만원 주유, 2만 5천원의 통행료가 들었고 1개월 전체로 하면 46만원이 교통비로 쓰이는 것이다. 급여는 세금포함 200만원. 4인 가족이 생활하기엔 재정 부담이 너무 컸다. ※이후 많이 개선이 되었다. 연재되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해고된 거에요. 샘은 제 자리에 온 사람이고요.

전임자

왕복 4시간 가까이 통근 자체만으로 스스로 격려하고 싶었지만 사무국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업무 인계를 해야 할 사람은 같은 건물에서 다른 업종으로 이직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인수인계를 마치 툭 던지듯, 다그치듯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어느 날 피스빌딩 내 카페로 부르더니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자신은 해고된 것이라고. 그러면서도 얄밉게 말하길 자기가 보상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요구하는데 처음엔 당황했고 나중에는 불쾌했다. 11월은 무례함과 혼란 속에서 해야할 일을 제대로 보시 못한 한 달이 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업무가 엉망진창…

#3 결정 그리고 후회

버텨보자고 다짐했다.

#3 결정 그리고 후회

한국회복적정의협회에 가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일은 후회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 거리, 낮은 급여,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버텨보자고 다짐했다. 한달 정도 시간이 있었다. 사직서를 먼저 작성하고 아내와 함께 덕소를 매주 1회 다녀왔다. 이사가 가능한 환경인지 알아봐야 했고 매일 다닐 길을 미리 익혀야 했다.

국제학교에서 사직서를 냈을 때 과장님이 매우 서운해하셨다. 처음 왔을 때부터 세세하게 많은 부분을 챙겨주고 마음까지 헤아려 주신 고마운 분이었다. 내가 만난 직장 상사 중 이만한 분이 또 있을까 싶다. 학교 담당 직원도 아쉬워하며 고급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전체 직원이 회식에 2차 3차까지 진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지금까지 따뜻하게 기억하는 2017년의 가을이었다.

덕소로 출근 첫 날, 반갑게 맞아주는 듯 하며 낯설었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자리도 없었고, 전임자는 까칠하여 말을 걸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퇴근 시간은 언제인지, 식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1년 전하고 변한 것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새 회복적 정의 운동에 참여하다는 기쁨보다는 후회가 되었다. 나의 결정이었고, 나의 책임이니 꾹 참기로 했다. 그나저나 집에 어떻게 가나.. 2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집. 앞으로 매일 다녀야 하는 길..

#2 국제학교

내 마음은 가치 있는 일에 헌신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두려웠다. 모순일까?

#2 국제학교 – 현실과 이상 사이

어렵게 입사한 국제학교에서 시설 관리 직원으로 1년을 채웠다. 최선을 다했다. 조금 할 줄 안다는 영어 덕분에 빠르게 인정받고 학교직원 채용이라는 좋은 제안을 받았다. 하청업체 소속에서 학교 직원으로 된다는 것은 경제적 형편이 나아짐은 물론 국제적인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반전을 꿈꿀 무렵에 회복적 정의 운동으로 다시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서부센터 퇴직 이후 아픔은 그대로였고 현재 활동하는 사람을 향한 기대도 높지 않았다. 게다가 이사를 고려해야 할 만큼 인천과 덕소의 거리는 상당했고 교통비도 많은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나를 잘 아는 분들도 만류할 정도였으니 무리를 해서 가야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회복적 정의는 나의 삶과 이웃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었다. 내 마음은 가치 있는 일에 헌신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두려웠다. 모순일까?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굳이 일터를 옮길 이유가 없었다. 🍂

#1 제안을 받았다.

201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회복적 도시 세미나에서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사무국장과 첫 만남.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또렷하다. 무슨 일이지? 비싼 주차요금을 내고 공항철도를 타고 왔는데 참석자는 없고.. 낯설고 피곤한 강의가 끝나고 늦은 밤 몇 사람과 광화문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한국회복적정의협회 후임 사무국장직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적인 고민이 이어진다..

14개월 전, 나는 영국비자 포기를 감수하고 한국에 돌아와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서부센터에서 회복적 정의 활동가로 합류했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부끄러워 할 틈도 없이 도망치듯 나왔다. 버려진 듯 누구의 도움 없이 외로운 길을 걸으며 힘든 순간을 버텼고 인정을 받아 좋은 제안을 받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궁핍함을 잠시 잊을 수 있다. 그렇게 아픔을 잊으려 할 때 다시 회복적 정의라.. 누구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다음 이야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