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피해자의 날 (유럽연합)

요즘 부쩍 지속가능발전협의회 활동가,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지속가능발전목표 16번 ‘정의, 평화, 포용’을 두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생소한(?) 회복적 정의를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지만 그 방향에는 대부분 공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직이나 활동에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고, 우리가 사법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되묻습니다. 방향이 맞는다면 더디더라도 가는게 맞겠지요.

22 Feb, European Day for Victims of Crime.

Every year millions of people in the European Union become victims of crime. The COVID-19 pandemic had its impact too. During the lockdown measures, we saw a rise in domestic violence, child sexual abuse, cybercrime, and racist and xenophobic hate crime. These victims need particular attention.
No matter where, victims should be able to freely access the support they need to address the harm that has been caused. Restorative Justice can potentially be used for any type of crime. RJ can help provide a means of closure for victims by directly or indirectly communicating about the harm caused.

(Statement by Vice-President Jourová and Commissioner Reynders on the European Day for Victims of Crime)

매년 2월 22일은 유럽연합국가의 ‘범죄피해자의 날’입니다. 유럽에서만 매년 수백만명이 범죄의 피해를 입습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가정폭력, 아동학대, 사이버 범죄, 인종차별 등 증오범죄가 증가했고 피해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앞으로 피해자는 어디에서나 피해 회복을 필요한 지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사법 절차는 잠재적으로 모든 유형의 범죄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간접적인 소통을 통해 문제를 매듭짓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참고. Statement by Vice-President Jourová and Commissioner Reynders on the European Day for Victims of Crime)

* 숫자 2가 12번이나 겹쳐 엔젤넘버라고 불리는 2022-02-02, 22:22:22 또는 2’s day on Tuesday 가 신기하네요. 기억하기 좋을 듯!

미얀마 민주화운동

2022년 미얀마는 아직 군부가 장악한 채 민주화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용기를 잃어가고.. 저항의 방식도 비폭력에서 폭력으로 전환하는 모양이다.

진실과 양심의 편에 서서 싸우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의 수고와 희생은 반드시 열매를 맺을거라 믿는다. “You never win with violence. Dignity always beats.”

애월낙조 – 장필순

I think everyone has a favourite music and artist. It’s bring me a peace and comfort. I am deplarious but clever and strong.

언젠가,
늦여름 제주 애월의 바닷가에서 낙조를 보고 싶다. 북아일랜드 Mourn 산맥 끝자락 칼링포드Carlingford 에서 산 너머 내리는 햇살을 보고 싶다. 산과 바다 그리고 조용한 들판이 있는 곳이라면..

#4 인수인계

업무를 인계해 주는 사람의 태도가 너무 차가워서 당황스러웠다.

낯선 경로는 아니지만 매우 피곤한 상태에서 출근을 했다. 인천 남동구에서 남양주 와부읍 까지 약76km. 경로의 대부분은 고속도로인데 통행료와 자동차 연료비가 크게 부담되었다. 경차 기준으로 1주일에 평균 6만원 주유, 2만 5천원의 통행료가 들었고 1개월 전체로 하면 46만원이 교통비로 쓰이는 것이다. 급여는 세금포함 200만원. 4인 가족이 생활하기엔 재정 부담이 너무 컸다. ※이후 많이 개선이 되었다. 연재되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해고된 거에요. 샘은 제 자리에 온 사람이고요.

전임자

왕복 4시간 가까이 통근 자체만으로 스스로 격려하고 싶었지만 사무국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업무 인계를 해야 할 사람은 같은 건물에서 다른 업종으로 이직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인수인계를 마치 툭 던지듯, 다그치듯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어느 날 피스빌딩 내 카페로 부르더니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자신은 해고된 것이라고. 그러면서도 얄밉게 말하길 자기가 보상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요구하는데 처음엔 당황했고 나중에는 불쾌했다. 11월은 무례함과 혼란 속에서 해야할 일을 제대로 보시 못한 한 달이 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업무가 엉망진창…

소유를 중시하는 야만적 자본주의의 그늘

안타까운 뉴스.. 절망의 어둠 속에서 무엇이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존권보다 소유권이 훨씬 중요하게 여겨지는 야만적 자본주의 문명의 시대. 사람의 가치는 물건의 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사람을 소비하는 사회.
노동이 멸시 당하고 소비가 신성시 되는 동안 인간의 존엄성은 비용과 이익의 계산에 따라 오늘도 그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안타깝다..

오늘도 자신의 가치를 높여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이웃과 동료와 단절된 채 경쟁에 매달려 있다.

사람은 소비재가 아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다.

“Ar scáth a chéile a mhaireann na daoine.”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은 모두 서로의 피난처이다.”) – 아일랜드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