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들이 새로운 정치 주체라고 말하는 것에 깃든 여성 혐오”

(엄문희)

이번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거리에 선 20-30대 여성들을 ‘새로운 정치 주체’라고 호명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들 여성은 30년전 40년전 아니 100년전에도 있었고, 그 전에도 정치적 주체로 엄연히 존재했었다. 그들은 최근에 각성하여 광장에 나타난 새로운 얼굴이 아니다. 그동안 가부장적 시선에서 무시됐거나 멸시당했던 주체였다. 혐오를 뒤집어쓰고 화형당한 마녀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만세운동을 알리기 위해 치마저고리에 문서를 넣고 겨울산을 넘다 잡혀서 갈기갈기 고문당해 죽은 학생이었으나 ‘의사’로 불리지 못한 여자였을 뿐이다. 있는집 배운집 사내자식으로 태어나 아내와 어머니의 돌봄을 받으며 의거를 일으킬 수 없었을 뿐이고, 미국이나 중국으로 건너가 ’큰 일‘ 하지 못하고 ‘뒷 일’ 하느라 이름이 지워진 가난한 여자였을 뿐이다.

쇠파이프로 시민 때려잡던 민주화운동 시절에 남학생들과 똑같이 싸우고도 당연하게 밀려난 여학생이었고, 학보사나 동아리방에서 술에 취한 선배에게 제압당해 성폭행 당한 학우였을 뿐이다. 여성들은 주먹밥을 날라주며 응원해줘야 칭송 받았고, 싸우고 돌아온 남자를 위로할 줄 알아야 조금 인정 받았다. 그들은 남성 관리인에게 쥐어박히며 무시당한 어린 노동자였고, 저항하면 똥물을 끼얹어 끌어내도 좋은 썅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이 무엇을 한대도 도우미에 지나지 않았고, 주목받는일은 용납 되지 못했다. 강정마을에도 싸우는 사람은 이미 90%가 여성이고, 그들은 과거와 오늘의 젊은 여성들이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외부화 되어 있다. 오죽하면 몇 년 전에 ‘기자회견에서 남성보다 앞에 서서 사진 찍히기’운동을 했을까?

20-30대 젊은 여성들은 ‘여성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우다 암살당했고, 2019 칠레혁명의 도화선도 여성이었으며,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끌고 온 이들도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불평등과 폭력의 대상이며 당사자였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예민하고, 가장 용감했다.

여성들을 ’새로운 정치주체‘라고 호명하지 마라. 남성들이 변화를 못이겨 보수화되며 고착된 사이 고단한 광장에 여성들이 남아있는 것이지, 여성이 이제야 각성해서 뛰어나온게 아니다. 여성들은 과거에도 , 오늘날에도 항상 싸웠고, 무엇보다 싸울 자격을 위해 싸워야했다. 지금 여성을 새로운 정치주체라고 부르는 당신들 남성동지들아! 제발 그러지 마라! 사랑하면서 타자화하는 여성숭배,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 싸움터 라는걸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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