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병과 포탄

가끔 커다란 스테인리스 보온병을 들고 출근하는데 문득 생각난 사건과 함께 생각을 적는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현장을 찾은 한 정치인이 보온병을 들고 “이것이 북한이 쏜 포탄입니다.”라고 말해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북한의 기습 포격 후 대응 사격을 하는 등 긴장이 높아지고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했다. 반복되는 핵 실험과 도발로 긴장이 이어지던 중 12년 만에 대북 방송이 재개되었고 개성공단이 폐쇄되었다. (2016년) 잠시 긴장이 누그러진 것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전후였다. 이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남북 화해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 결렬과 COVID-19 등으로 소통과 교류가 중단되면서 경색 기미가 보이더니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는 단절이 된 모양새다.

북한이 2024년 신년사를 냈다. 북한은 각종 담화 등에서 우리를 ‘남한’이 아닌 ‘대한민국’이라 지칭하며 선 긋기에 들어갔다. 이는 그동안 유지한 ‘잠정적 특수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즉, 두 개의 국가 관계로 재설정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통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많은 전문가는 2024년에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해 정부와 대통령실은 ‘가짜 평화’를 운운하며 도발에는 강하게 응징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막강한 국방력에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 전쟁은 그 자체로 모두를 죽음과 절망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누가 먼저 공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 일어나는가의 문제다.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에서 폭격과 교전이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시민이 가족과 집을 잃고 생존을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다. 북한은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보다 희생이 크고 회복이 더딜 것으로 생각한다.

한 정치인이 착각한 보온병은 포탄과 닮았지만, 그 쓰임새는 다르다. 따뜻한 물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어 추운 날씨에 온기를 느끼고 낭만을 누리기에 좋은 물건이다.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도구이자, 현대인의 일상과도 어울리는 도구다. 포탄은 일상과 삶을 파괴한다. 오랫동안 뼈아픈 기억을 남긴다. 남과 북이 포탄이 아닌 보온병을 주고받으면, 따뜻한 온기와 시원한 냉수를 나누며 다시 화해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란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도 일터 한구석, 삶터 어디선가 ‘말 폭탄’이 날아들고 있을 때, 따뜻한 물을 품에 안고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보온병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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